착각

2008/01/31 01:34

  퇴사 후 정확히 한달동안 집에서 가사일을 해보니, 아내가 그동안 내가 집에 없을 때 하던 일이 어떤 것이었는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저 퇴근하고 방긋 웃는 딸을 껴안고, 맛있게 차려진 밥을 먹고, TV를 보고 앉아서 아내가 털어놓는 그날의 일상적인 얘기를 듣고 있었던 것이 전부였는데, 20평이 안되는 조그마한 집에서 하루종일 일어나는 육아와 가사일이라는 것은 끊임없는 아이에 대한 관심과 부지런한 정리정돈과 필요물품의 주문에서부터시작해서 아이가 아플때 취해야하는 행동들이라든지 혹은 관계된 사람들과의 만남같은 것 또한 신경써야 하는, 말그대로 만능엔터테이너를 요구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셀수도 없는 수 많은 일거리들이 보이지 않는 사이에 전부 무시되고 평가되지 않았던 것일 뿐, 신체 건장한 남자가 하기에도 상당히 귀찮고 힘들고 헷갈리는 경우가 매시간 매분 매초 반복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아내와 은채에게 미안했다. 나 스스로는 세상의 그 어떤 남자, 그 어떤 아버지보다도 더욱 가정적이고 성실하며 착하고 굳센 사람이라고 여기면서 가장이라는 명목하에 위로를 받고 권위를 인정받고 싶었건만 사람의 이기심과 자만심이라는 것이 얼마나 세상을 잘못 보게 만드는지, 얼마나 아전인수격으로 상황을 파악하게 만드는지, 직접 피부로 체험하고 나서야 그 진실을 알게되었다. 왜 인간은 자기에게 일어나는 사건들을 극대화하게 되는 것일까...

  감사해야할 일일지도 모른다. 이 기회가 아니면 놓쳐버릴 수 있는 경험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하고, 식사기도를하고, 아이와 같이 그림을 그리는 것들이 왜 그리 절실하게 나에게 주어지는지, 왜 그리 고요하게 나를 흔들어 일깨우는지 감사해야할 일일지도 모르는 것이다...